"영화는, 진리를 위한, 혹은 진리를 찾기 위한 초당 24개의 거짓이다" -by 미카엘 하네케
[한 줄 평 : 다 좋았는데 왜 하필 호러였을까?]
평점 : ★★★☆☆
1.완벽에 가까운 연출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영화적 특징 중 하나를 꼽아보라면 아마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특유의 영국식 개그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그런 개그는 모두 제외하고 대신에 현실과 과거가 서로 자연스럽게 섞이는 연출을 선보이는데
정말 황홀하기 그지없을 정도로 멋진 연출입니다. 또 하나 두드러지는 모습은 다리오 아르젠토의 명작 <서스페리아>를 연상케 하는 원색 조명의 활용이었네요
정확히는 이탈리아의 지알로 영화에 대한 오마주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지알로 무비 스러운 요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트렌치 코트를 입은 여주인공과 칼날에 비친 공포에 질린 여성의 눈동자 등등
여기에 60년대 런던을 완벽에 가깝게 재현한 배경과 그 당시의 시대로 타임 머신을 타게 하는 음악 등은 영화의 미장센을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있었어요
2.안야의,안야를 위한, 안야에 의한 영화
-이 영화는 사실상 안야 테일러조이를 위한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첫 등장부터 그녀는 영화 속 프레임을 자신의 독무대로 만들고 있어요. 거의 휘어 잡고 자신의 매력을 뽐내는 이 영화에서 그녀의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 없지 않나 싶을 정도로요
물론 토마신 맥켄지가 연기를 못 한 건 아닙니다만 안야 테일러조이의 존재감이 너무 커서 사실상 그녀 혼자 이 영화를 하드 캐리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을 정도에요
큰 눈으로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당당하게 활보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 영화의 일등 공신이자 이 사람은 정말 천생 배우구나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였네요
3.그럼에도 왜 '호러'였을까?
-하지만 문제는 후반부에서 발생합니다. 이 영화의 호흡이 꽤 긴 편이긴 하지만 주인공인 엘리가 (토마신 맥켄지) 과거의 샌디의 (안야 테일러조이) 환영을 보면서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심리적 동조'에 대한 연출은 딱히 모난 부분은 없어요
오히려 심리 스릴러 스러운 느낌이 물씬 나서 훨씬 흥미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대체 샌디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에 대한 미스터리로 영화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갑자기 등장하는 오컬트 호러적 요소는 많이 낯설어요
스릴러와 호러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장르는 아닙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엘리는 샌디의 과거에서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그녀의 죽음에 대한 비밀과 범인을 파헤치려 하지만 문제는 갑작스런 반전에서 이 모든 것이 뒤집어 집니다
초반부에서 엘리는 시골에서 런던으로 상경한, 의상 디자이너를 꿈꾸는 순수한 소녀입니다
그런 그녀가 가수를 꿈꾸는 샌디의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끼는 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호러 파트가 맡아야 하는 건 '60년대 런던에서 의지할 곳 없는 여성이 느끼는 낯선 환경과 사람에 대한 공포' 가 되어야 하겠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이 반전으로 인해 여태 쌓아 올린 개연성을 한 방에 부셔버려요
호러 파트가 지향해야 할 목적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죠
그렇다면 방향을 바꿔서, 주인공이 느끼는 정신적 혼란에 대한 것은 아닌가? 라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이 역시도 마찬가지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애초에 시작부터 심리 스릴러 요소를 잔뜩 가진 채 시작했으니, 정신착란 이라는 요소 또한 심리 스릴러에서 맡는 것이 조금 더 자연스러워요
결국 이 영화에서 호러 파트의 존재감은 그저 허공에 붕 떠버리게 됩니다
최후반부 파트 역시 현실과 비현실을 적절히 녹여내어 연출의 미술적인 면에선 감탄이 나오기는 하지만, 마찬가지로 심리 스릴러의 요소를 더 강화시킬 뿐, 호러 요소는 거의 밀어내다시피 하는 장면입니다
또 하나 아쉬운 건 주인공이 의상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이니 호러 파트를 들어내고 차라리 이 부분을 영화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 시켰으면 영화의 지알로 요소를 좀 더 강화해서 보는 맛이 한층 더 살아나지 않았을까 싶어요
여기에 주인공인 엘리의 변화에 따른 주변인들의 반응은 조금 납득하기 힘든 지경이 됩니다
전체 상황을 알고 있는 관객이야 그녀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 가능하지만, 사실상 거의 반 미쳐버린 상태에서 민폐 캐릭터로 전락해버리는 주인공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 작위적이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5.그래도 볼만한 영화이긴 하다
-호러 영화 매니아로서 호러 파트가 상당히 밋밋한 건 너무나 아쉬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배우들의 멋진 연기와 미장센, 연출이 어우러져 2시간이 넘는 긴 런닝 타임이 딱히 아까운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특히 안야 테일러조이의 팬이라거나, 혹은 평소에 그녀에게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는 꼭 보라고 말하고 싶네요
이 영화 속 그녀의 모습은 정말 너무 매력적이거든요